‘영혼의 진리 - 속편’
‘영혼의 진리 - 속편’
  • 김홍준 기자
  • 승인 2019.01.14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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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은 존재를 드러내지도 행함의 표시도 없지만 혼의 중심에서 혼이 원하는 데로 다 내어준다. 그래서 혼은 드러내기를 좋아하고 무엇이든지 마음먹은 대로 다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화려한 혼의 기능을 과신하다가 많은 종(種 Species)들은 그들만의 국한된 언어에 잠기고 국한된 생각에 잠겨서 서서히 자신의 근원(Origin)에 영(신)이 있었음을 망각하고 만다.

죽어서는 영(신)의 줄기가 강해야만 천당(극락)으로 되돌아갈 수 있음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오로지 영장류에게만 죽음을 “돌아가셨다”라고 하는 이유이다. 영원불멸의 영구한 영을 알아야만 영장류(靈長類)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죽어서도 오로지 영이 있기에 영구(靈柩)차를 타고 위령(慰靈)제의 위안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영은 극락왕생하였으니 땅에 남은 주검은 망령(亡靈)이라고 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정령이 ‘심령’으로 표현되고 있다. “심령이 가난한(영을 늘 갈망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 했고, 또 “마음(혼)이 청결한(비워진)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 했다. 이는 한국말로 “혼이 나야(비워져야) 정신이 들지”와 같은 말이다. 남의 물질을 탐하다가 붙들려서 “정신 차려 이놈아” 하면서 죽도록 때림을 당해야 “혼이 났다”고 하는 것이다. 또 사람이 먹고 사는 일이 바쁘면 혼의 활용이 커져서 반면으로 “마음이 바빠서 정신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태초이전 형이상을 노자는 무위(태허, 혼돈)라 했고 석가는 공(空)이라 했다. 그리고 태초의 형태를 노자는 일(一), 도(道), 자연(自然)이라 했고, 석가는 일승(一乘 훗날에 대승이라 함),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다. 마호메트는 알라(a one)라고 했다.

성경 창세기 제1장에서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하여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The earth was formless and empty, darkness was over the sur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waters.)”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이다.

위의 영문은 다음과 같이 번역함이 옳다고 본다. “이승(땅)은 혼돈이요 공허였는데 은미함이 깊은 곳으로부터 표면 위로 떠올랐고, 신은 물(물질)의 머리위에서 맴돌게 되었다”이다. 그러고 보면 노자, 장자의 글들과 같음을 알 수 있다.

위에서 말하는 물은 물질계 전체로 보아야 한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가 되리라”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후손들에게 이어져 뻗어가는 정신줄(가계도)을 나무뿌리에 비유하여 그렸다. 한자 ‘丶’은 ‘불똥 주(점)’이며 태초의 양기를 말한다. 그리고 ‘丨’은 ‘뚫을 곤’으로서 위아래로 통한다는 의미이다. 王(왕)자와 主(주인, 줏대 주)자에 다 쓰인다.

천지인을 꿰뚫는 자를 왕(王)이라고 한다. 왕(王)은 하늘, 인간, 땅을 꿰뚫어 통한다는 의미이다.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의 십자가 위에 써 붙인 명패도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써져 있었다. 한반도에서도 신라 22대 지증왕이 처음으로 불교를 수용하면서 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게 되었었다.

그리고 王 위에 丶을 찍으면 주님(主)이 되는 것은 최초의 빛 하나가 천지만상의 주인이라는 말이다. 불(빛)의 본질은 기(氣)이며 그 불똥은 수 억조로 갈라져도 그 기의 중심 즉 영적으로는 한통속임을 알아야 한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나 예수가 백성들의 공회로 끌려들어간 자리에서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등의 문장은 王(왕)이라는 한자를 알고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丨’은 中(중)자에도 쓰인다. 불똥 하나에서 시작된 우주의 모든 생명체에는 심지(心旨)가 들어있는 것이다. 그리고 심지의 旨(지)는 원래 비녀(匕)가 구멍(口)에 꽂혀 있다는 글자였는데 후에 口 가 日로 바뀌었다. 태양과 연결 지어진 ‘정신줄’이라는 말인 것이다.

‘丨’은 个(낱 개)에도 쓰인다. ‘丨’은 정신줄(정신의 심지)인데 ‘个’처럼 그 정신줄이 이어지지 못하고 끊어져버리면 자기 개인밖에 모르게 되어 ‘줏대 없는 인간 즉 짐승 같은 사람’으로 변화되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卜’은 복 점/ 짐바리 짐 글자이다. 정신줄에 마음이 맺힌다는 글자인 심(忄 㣺 心)자처럼, 본디에는 곧았던 정신줄도 육신의 마음이 어리기 시작하면 그 마음(짐)이 쏠리는 대로 그 줏대는 휘게 되는 것이다. 식물의 뿌리와 같은 이치이다. 그리고 ‘旨’는 ‘뜻 지’자로서 선미(선하고 아름답다)하다, 맛있다 등의 의미이다.

우리에게 신은 늘 기의 원천이 되지만 그는 오로지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만을 취한다. 마치 짝사랑 하듯이 실체를 감추고서 공중정지(hovering) 상태로 물체에 짝하여 맴돌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성(물리적 성질)세계에서는 혼(마음)이 주인노릇을 한다. 이승에서의 신(神)은 그토록 한없이 너그럽고 온유하지만 특이한 것은 인간이 혼자서 생각만 해도 그것은 바로 뇌에 기록(기억)되어 신에게 들통이 난다는 점이다. 신은 혼백에게 자유를 주지만 혼더러 자기행위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확고히 지도록 시스템화 되어 있는 것이다.

心자는 ‘마음, 뜻, 생각’의 의미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道의 본원(本源), 알맹이, 고갱이(식물 줄기 중심의 연한 심)’의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신, 즉 영의 심지를 무시하며 응집(凝集)의 욕심에만 몰두하는 자는 결국 그 심지가 끊어져서 지옥(짐승세계)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악한 짐승은 얼굴도 흉하고 험상궂게 생겼다. 영은 육신의 계통을 갈아타며 윤회하기에 사람(영장류)은 모름지기 그 정령을 극진히 대해야 하는 것이다.

‘中’자는 또 마음의 중심 즉 심지(心旨 해의 줄기)를 측면에서 본 모양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심지를 단면으로 잘라서 보면 ◉으로써 혼백의 중심(中心)에 박혀있는 심지인 것이다. 심지의 중심에 있는 검은 점(영)은 양기이고, 그 둘레의 혼백은 음기이니 그 혼백의 권세가 커질수록 영의 심지는 고약해져서 심령은 마르고 마는 것이다.

우리의 정신이 우리의 몸 정곡에 자리할 수 있는 것은 신의 불똥이 우리의 머리통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너무도 명확하게 이를 밝히고 있다. 하나의 최초 불똥이 물질세계의 태초이신 하나님이시다. 그 불똥이 우리의 머리에도 들어있다. 우리 머리통 정수리부위에는 소용돌이(와상문양)의 가마가 있다. ‘가마’는 불을 지피는 아궁이를 말한다. 한자로 써도 신문(囟門, 숫구멍)이다. ‘囟’자는 불똥이 구멍으로 들어가고 나서 마감을 하여 숯이 된다는 뜻이다. 그 불똥은 14여년을 지난 후 숯불의 불씨로 자라서 또다시 난자에 꽂힐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난자는 자궁(아이의 궁전)에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육체를 만들고, 척추의 꼬리뼈 아래에 불알이라는 수컷의 심볼을 형성한다.

또한 세상에 나와서 성년이 되면 그 불알 속에서 정신을 이어줄 또 다른 정자를 만든다. 그 정자는 때가 되면 아버지의 심지와 어머니의 보자기를 통해 또다시 난자의 정수리에 불씨의 심지를 꽂는 것이다. 처녀막이 형성되어 있는 동안은 여자도 숫처녀라 한다. 아직은 불씨를 살려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자의 불씨를 품은 난자는 계속하여 하나의 생명으로 타오르는 일을 반복한다. 얼(혼백)의 임무는 영이 실린 바통(baton)을 중계(relay)하는 것이다. 이어달리기 와중에 그 주자가 아무리 잘 달려도 그의 손에 바통이 없다면 그 주자는 이미 아웃(out)이다. 이것이 하나님 기(氣)의 윤회인 것이다. 따라서 그 기의 정곡에는 곧 영(靈)이 깃들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스스로(내가 참 나를)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던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면서까지 그토록 가르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영(靈)이다. 그런데 그 영을 백두산자락 태고(太古)의 조상들은 이미 한자를 만들 때부터 자세히 표현하고 있다. 삼국을 통일하고 불국사를 지을 때 석가탑의 동쪽에 화려한 다보탑이 하나 더 세워진 이유 또한 석가보다 훨씬 이전부터 수많은 보배(성인)들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 탑의 이름이 다보탑(多寶塔)이기 때문이다.

영(령)은 한자로 靈이다. 靈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진 시기는 기원전 고조선을 훨씬 앞서는 시기이다. 이 靈이라는 글자 안에 불경과 성경책이 통째로 들어있다.

‘雨’는 하늘에서 빗방울이 쪼개져 내리는 모양이다. 우주의 모든 생명체는 신의 기(氣)를 받았고, ‘口口口’는 뭇 생명체들이 입을 벌리고서 하늘에서 내리는 기를 받아먹는 모양이다. 따라서 인간도 똑같이 그 기운으로 살아가지만, ‘巫’는 결국 사람들이 영(靈)의 고마움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가 천당과 지옥으로 양분되고 만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글자이다. 이것이 화평이 아닌 부모와 자식 그리고 형제가 싸우도록 검(劍)을 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왔노라고 했던 예수의 그 두꺼운 성경책 내용이고, 그 수많은 불경의 내용이며 노자가 말하는 도덕경의 내용인 것이다.

그리고 혼(마음)은 영에 의지하면서도 또한 자신의 의지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실행한다. 따라서 마음(혼)은 그 정신에 어린다. 그것이 얼(응집)이다.

 

글 : 전 기 종

- 저서 : ‘영혼의 진리’, ‘영혼의 진리 - 속편’

- 2018 글로벌컨슈머대상 봉사부문 컨슈머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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